하와이에 온 지 11일이 지났다. 딱 절반이다. 시차 적응, 생활 적응이 끝났다. 밤에 잘 자고 아침에 잘 일어나고 때 되면 배고프고... 버스는 어디서 타고 어디서 내리는지, 식료품과 생활 용품은 어디서 사야 하는지 잘 안다.  엘리베이터 같은 좁은 장소에서 사람을 만나면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물론 모든 사람이 그러는 건 아니다.) 동선이 겹치면(예를 들어 좁은 통로를 양방향에서 접근할 때) 살짝 물러나 상대방의 길을 열어주거나 먼저 지나가면서 Excuse me 혹은 Sorry 라고 말해준다. 엘리베이터나 버스를 탈 때는 내리는 사람이 다 내리고 난 뒤 타고, 내 짐이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계속 신경쓰고 다녀야 해서 힘들 수도 있지만 이 사회를 유지하는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것이다. 길거리나 버스 안에서 심하게 떠드는 사람도 없고 불쾌감을 주는 사람도 없다. 간혹 홈리스 같은 사람들이 버스에 자리를 틀고 개인 트렁크를 열어 짐정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이해를 해주는 것인지 용납하는 것인지... 여튼 내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아무 걱정없이 평안하게 지내다가 돌아갈 수 있다. 누구라도.

  사람들에게는 각자 자기의 영역(Territory)이 있다. 이 영역을 보장 받기 위해 먼저 남의 영역을 존중 해주어야 한다. 이런 삶의 방식이 각자의 그리고 서로의 행복을 지켜주는게 아닐까 생각 해본다. 내가 남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하면 누구라도 나의 영역을 침범 할 수 있게된다.

  이런 태도(Attitude)가, 이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그리고 생활인과 관광객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 도시를 평화롭게 유지 시키는 근간일 것이다. 사실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의 삶을 묻혀가며 얽힐만큼 시간이 넉넉한 사람들이 아니다. 잠깐 왔다가 금방 떠날 사람들이다. 그저 좋은 경험, 행복한 기억만 남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런 태도는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며 배려하면 모두 다 좋은 기억을 남기는 행복한 여정이 될 수 있다. 모두 윈윈 하는 것이다.


  더 오래 머물수 있다면 좋을 텐데 기간이 짧다. 22일이 짧다면 욕할 사람도 있겠지만 제대로 하와이안이 되려면 너무너무 모자라다. 근처에서 하는 공연이 많을 텐데 아직 찾아보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훌라춤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못했다. 가능하면 나도 살짝 훌라춤을 배우고 싶은데...ㅋㅋ. 우쿠렐레도 배우고 싶다. 조깅 할 때 와이키키 해변 벤치에서 우쿨렐레를 배우는 어르신들을 봤다. 너무 좋아 보였다. 같이 앉아서 배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서핑도 제대로 배우고 싶다. 적응이 어느 정도 끝나면 이번 주부터는 배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건 억지로라도 가봐야 겠다. 금요일에 꼭.

  먹고 살 물건들을 점검해 봤다. 한국에서 가져온 것도 아직 남아 있다. 내 주부 본능이 사들인 물건들도... 이번 주는 거뜬하다. 다음 주는 또 채우면 되고 ㅋㅋㅋ

  하와이에 왠만큼 적응하고, 하고 싶은게 생길만 하니 반환점 이라니... 더 가고 싶다... 하지만 돌아가야 할 곳이 있고 해야할 일이 있고... 그래도 이곳에서의 기억이 삶의 에너지가 되고 활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받은 행복한 기운 업무 복귀해서 십분 발휘 하리라.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Walmart에 들렀다. ICC가 부모에게 좋은 점 중 하나는 근처에 쇼핑몰들이 몰려있다는 것이다. Alamoana 쇼핑센터, Target, Walmart 그리고 돈키호테까지. 원하는 물건들을 저렴하게(솔직히 한국과 비교해서 많이 비싸다는 느낌은 안든다) 살 수 있다. 다만 쇼핑 욕구를 자극하는게 문제다. 보면 사고싶다.(지름 신이여 정말 나가시게~~!) 가방은 들고 들어갈 수 없어서 락카에 보관했다. 가방 없이 다니니 오히려 편했다.


  오늘은 Punchbowl Cemetery에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Punchbowl은 화산으로 생긴 칼데라에서 물이 모두 빠져나가고 그릇(Bowl) 모양의 지형만 남은 곳이다. 이곳에 2차대전, 6.25,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목숨을 잃은 용사들이 잠들어 있다. 그들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관도 있다. 그런데 인석들이 안 간단다. 꼭 가야할 텐데... 금요일에 가는 것으로 변경 했다.

  버스타고 집 근처 정류장에 내리자 마자 아이들이 용돈을 달라고 했다. 철석같이 기억한다. 용돈은 $3로 내렸다. 책을 사주고 내린 것이다. 아이들도 흔쾌히 허락했다. 기분 좋을 때는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 ㅋㅋㅋ 용돈을 받으면 당연히 군것질을 하러 상점에 들른다. 변함이 없다.

  집에 오자마자 개어서 포개 놓은 빨래를 정리 시켰다. 그리고 영어책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도록 영어 사전 찾는 법을 가르쳤다. 이녀석들 이미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 했단다. 헐...

  저녁 준비를 하는데 석양이 멋져서 한컷.

  오늘 저녁은 소고기 뭇국이었다. 한국서 가져온 비땡고 간편식이라 냄비에 붓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아이들은 역시나 맛있게 먹었다. 저녁 먹고나서 쥬만지 영화 시청 후, 원카드 게임을 했다. 요즘 애들의 재미는 원카드 하면서 나를 놀려먹는 것이다. 조작(애들 말로 주작)은 물론 내 뒤로 살금살금 다가와 패를 몰래 보고 간다. 서로 상의 하기도 한다. 절대 이길 수가 없다. 못된 녀석들... 그래도 귀엽다.ㅋㅋ

  내일은 알라모아나 비치에 수영하러 간다. 나도 가기로 했다. 아이들이 해파리 걱정을 한다. 내일은 아무일 없을거라고 이야기 해줬다. 나도 그러길 빌어본다. 잘 자라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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